책갈피를 넘기는 시간
책갈피를 넘기는 시간.
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길에서 生을 마감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이 없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길을 가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길에서 죽는 객사客死를 꿈꾸었는데,
이 세상에 살면서 길보다 더 좋아한 것이 어쩌면 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문자를 알고서부터 어느 날 문득 문자중독증에 걸려 문자 조립공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사는 이것은 병인가? 기쁨인가?
나처럼 그 문자 중독증에 걸려서 살았던 사람이 이덕무였다.
“목멱산木覓山 아래 어떤 어리숙한 사람이 있는데, 어눌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성격이 게으르고 졸렬해 시무를 알지 못하며, 바둑과 같은 것은 더욱 알지 못한다.
남들이 욕해도 변명하지 않고 칭찬을 해도 자랑하지 않으면서 오직 책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아, 추위나 더위 그리고 배고픔과 질병마저 전혀 알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기까지, 일찍이 하루도 고서古書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작지만, 동창과 남창, 그리고 서창이 있어, 해가 동서로 가는 것을 따라 그 빛을 받으며 책을 본다. 읽지 못한 책을 보면 문득 기뻐서 웃으니 집안사람들이 그 웃음을 보게 되면 그가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을 알았다.“
이덕무의 <영처문고> ‘간서치전看書痴傳 에 실린 글이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으면서도 지금도 내가 접하지 않았으면서도
내 마음을 흔드는 책을 만나면
마치 열 예닐곱 살 먹은 소년이 첫눈에 반한 아리따운 소녀를 바라보듯
가슴이 아릿한 것이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가장 안정된 행복은 사물에 있지 않고, 취미에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구하면 그것으로 행복할 것이며, 남이 좋아하는 것이 생긴다 해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라 로쉬푸코의 말이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行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중용 제 9절>에 실린 글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것이 아닐까?
밤이 깊을 깊어질수록 좋아하는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한 계절,
추운 겨울밤이 아닐까?
계사년 정월 스무아흐레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