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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3대구라

해풍 2013. 7. 14. 12:47

 대한민국의 3대구라

 

구라(口羅)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란 도 있는데, 여하튼 한자 그대로 말을 비단같이 매끄럽게하여 상대방을

현혹시킨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3대구라라고 명명해야 올바른 표현이지만 구라 자체가 좀 허황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구라세계에서는 맛갈스럽게 "조선"의 3대구라라고 통용된다.

조선의 3대구라는 무협계에 소림파와 무당파가 있듯이 구비무학(口碑文學)파

또는 일명 <라지오파>와 <교육방송파>가 있는데

구비문학파 3대 거두는 백기완, 황석영, 방배추(본명 방동규)이고
교육방송파 3대 거두는 이어령. 유홍준, 도올 김용옥이다.

 

우선 '라지오'(구비문학파)구라의 3대 조건을 열거하면
첫째, 뭣 좀 안다며 입술을 나불거린다고 '라지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가 꽉찬 방송처럼 일단은 남다른 인생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첫째, 백기완, 황석영, 방배추 등 3대 구라의 인생 정도는 되어야 한다.

두째, 지성이다. 뭘 알아야 한다.

세째, 남다른 경륜이 있어야 한다.

근사한 구라는 감동과 울림이 있어야 한다.

 

구비문학이란 문학의 한 장르로, 말로 된 문학을 말하며
글로 된 기록문학과 구별되는데,


70년대 군사정권의 통제와 억압이 횡횡하던 때 피맛골 '열차집'이나 '청일집' 등

막걸리집에 앉아서 이야기하던 때의 입담들이었다.

이 중에서 백, 황, 방이 단연 뛰어 났는데,

백기완은 대륙구라, 황석영은 육담구라, 방배추는 인생파구라라고

한마디로 특징지었다.

특히 황석영의 육담구라는 일품이라고 정평 나있다.

백기완은 1933년생으로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한 재야운동가이며

현재 통일문제연구소장이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 후보(1987년은 중도 사퇴)로 출마하기도 한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이나 독학으로 공부하여 박학다식하다.
하루에 영어단어 100개를 외웠고 책 읽으며 길가다가 전봇대에 부딧치기 일수였고

영수학원에서 영어강사도 하였다.


황석영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긴 설명 필요없으나 한마디 한다면

그는 몇해 전 MB따라 중앙아시아에 가더니 이에 대해 좌파의 비난이 쏟아지자

또 좌회전하여 작년 부산영도 희망버스에 가담한 것은 그가 날나리가 아닌가 하는

실망감을 가지게 한다.

방배추는 본명이 방동규로 체형이 배추같다 하여 방배추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이 70에 미스터코리아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한 그는 백기완의 절친한 친구로

백이 대통령출마시 경호대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팔뚝이 보통 사람의 3배는 되고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 불렸다.
그는 1935년생으로 홍익대 법학과를 중퇴했으며 백기완, 함석헌, 계훈제 등과

교유하면서 교양을 쌓았다.

한때 경복궁관람안내지도위원도 했으며, 독일파견광부, 파리유랑생활,

중동건설공사근무, 고급양장점 '살롱 드방'운영, 철원의 '노르메기 밭' 10만평

농장개간 공동체생활 등 소위 그의 말대로 '살인 빼고는 안해 본 일이 없고

남극 빼고는 않가 본 곳이 없다'라는 파란만장의 인생을 살았다.

이만큼 그의 인생역정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천하의 황석영도 노가리를 까다가 방배추가 들어오면 슬그머니

'라지오'를 껐다고 한다.

이는 유홍준이 무뤂팍도사에 출연하여 한 말이다.

그리고 최근 조선일보에 그가 아직도 건재함을 알리는 기사가 난 바가 있다.

  

다음 교육방송 3대구라인데 이는 방배추가 붙여준 이름이다.


어느날 대폿집에서 한량들이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이어령, 유홍준, 도올이도 구라대열에 끼워주어 '조선구라계'를

무협계와 마찬가지로 '6대 문파'로 해야 한다고 하자,
마침 이때 방배추가 쓱 들어 오더니 "갸들은 교육방송이야"라고 일축해 버렸다 한다.
'국민교양용 구라'라는 것이다.

여하튼 이때 거론된 교육방송 3대구라는 문학평론가 이어령, 미술사학자 유홍준,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이다.

이어령은 1934년생으로 긴 설명이 필요없고 우상화된 기성문단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선언한 평론 <우상의 파괴>는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흙 속에서 저 바람속에>는 대학생의 필독서가 되었다.

일종의 천재로 88올림픽의 개막식무대감독으로 그의 비범함을

확인시켜주기도 하였다.

 
유홍준은 1949년생으로 1973년 5월에 우리나라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출간으로 혜성같이 미술사학계에 나타났으며

이 책의 출간으로 전국각지에 문화유산답사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이 열기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는 문화재청장임에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언론의

수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명언으로 전국적인 답사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는데, 요즈음은 어디에서 배웠는지 다음과 같은 말에 심취되어 있다.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

삶의 도처에서 숨은 고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으로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말이다.

그도 이제 나이가 먹으니 철이 좀 드나 보다.


마지막으로 도올 김용옥인데, 그는 1948년생으로 본업이 동양철학자이면서

종횡무진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가장 이채로운 것은 영화와 연극의 시나리오를 쓴 극작가로,

임권택감독의 "장군의 아들", "취하선"의 대본을 썼다.
"취하선"은 2002년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는데 그가 자막을 직접 영역했다.

원광한의대를 졸업한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많은 난치병환자를 치료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자중하고 있는지 언론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다.

添言하면, 만약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를 쓴 무애 양주동교수나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을 쓴 수주 변영로교수가 생존해 계시다면

교육방송구라 셋 중 둘은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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