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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 어머님(작가미상)

해풍 2014. 3. 27. 08:32

내 나이 1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아래론 여동생이 하나 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
못 먹고, 못 입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유롭진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입사 2년만에 결혼을 하였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다.
시어머니도 처음부터 날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다.

10년 전, 결혼한지 만1년만에 친정엄마가 암선고를 받으셨다.
난 엄마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 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다음날 친정엄마 입원을 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엄마도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후에 입원하자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때 시어머니께서 전화가 왔다.
"지은아, 너 우니? 울지 말고 내일 3시간만 시간 내다오"
다음 날, 어머니와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어머니는 무작정 한의원으로 날 데려가셨다.
미리 전화 예약 하셨는지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간병 하셔야 한다고요"
맥 짚어보시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재 지어주셨다.
어머니는 나를 백화점으로 데려가셨다.
트레이닝복과 간편복 4벌을 사주셨다. 선식도 사주셨다.
죄송하면서도 좀 답답한 마음으로 함께 집으로 왔다.

어머니께서는 그제서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고 있지 말고..."
말씀하시며 봉투를 내미셨다.
"어머니 병원비 보태 써. 니가 시집 온지 얼마나 됐다고 여유돈이 있겠니.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니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 써.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 유치하고 애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할 때
꼭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얘기 하게 돼있어. 그러니까 우리 둘만 알자."

봉투를 마다 했지만 끝끝내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어머니께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2천만원이었다. 친정엄마는 그 도움으로 수술 하시고 치료 받으셨다.

이듬해 봄 엄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한 걸음에 남편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으셨다. 엄마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주셨어. 내가 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으셨다.

시어머니께서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어주셨다.
우리의 결혼 사진이였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 말고. 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 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줄께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 계신 거였다.
가족들이 다 왔고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신 채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날 붙잡고 시어머니께서 함께 울어주셨다.

어머니는 집으로 가시라는 데도 3일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주셨다.
우린 친척도 없다. 엄마도 사는 게 벅차서 따로 연락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니 덕분에 3일 내내 북적거렸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닌 내 동생까지 잘 챙겨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땐 꼭 내 동생을 챙겨주셨다.
시어머님은 정말 고맙게도 동생과 나 이상으로 잘 지내주셨다.

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시어머님이 또 다시 나에게 봉투를 내미신다.
"어머니. 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께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다달았을 때 문자가 왔다.
내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그 길로 다시 어머니께 달려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투정도 부렸다. 안 받겠다고.

어머니가 함께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지은아, 너 기억 안나? 친정 엄마 돌아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주겠다고. 나 이거 안하면 나중에 니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니?"
시어머님은 친정엄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주셨다.
난 그 날도 또 엉엉 울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우리 순둥이,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싶을 땐 목놓아 울어버려"

제부될 사람이 우리 시어머니께 따로 인사 드리고 싶다 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시부모님, 우리부부, 동생네.
그때 어머님이 시아버님께 사인을 보내셨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처녀 혼주 자리에 우리가 앉았음 좋겠는데..."
혼주 자리엔 사실 우리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 안계시다고 말씀 안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난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 동생 커플은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우리 시아버님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였다.
결혼한 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우리 시댁에 잘 해주었다.

오늘은 우리 어머님의 49제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오는 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
오늘 10년 전 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그 때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주셨다고...
남편과 난 부둥켜 안고 어머님 그리움에 엉엉 울어버렸다.

난 지금 아들이 둘이다.
난 지금도 내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내 어머니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싶다.
내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우리 어머님이다.
항상 나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 사랑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든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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