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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압축한 묘비명

해풍 2014. 5. 22. 07:40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압축한 묘비명.

*김수환 추기경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 (시편의 한 구절)

*박인환 (시인)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조병화 (시인)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어머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중광스님 ....."에이 괜히 왔다 간다"
*천상병 (시인)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나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

*이순신 장군 ....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

*사도세자 ...... "끝내는 만고에 없던 사변에 이르고,
백발이 성성한 아비로 하여금 만고에 없던 짓을 저지르게 하였단 말인가?"
(아버지 영조의 심경을 그대로 피력한 비문이지 싶습니다)

*처칠 ........"나는 창조주께 돌아갈 준비가 됐다. 창조주께서 날 만나는
고역을 치를 준비가 됐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에밀리 디킨슨(미국의 시인)...."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테레사 수녀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루와 같다"

*버나드 쇼(영국의 극작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아르키메데스 ... "내 묘비는 원기둥에 구가 내접한 모양으로 세워 달라"

*노스트라다무스(예언가)... "후세 사람들이여, 나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시오"

*모리아 센얀 (일본선승)...."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 줘.
운이 좋으면 술통 바닥이 샐지도 몰라" 미리 묘비명을 써 놓으신 분도 계십니다.
*평생 처녀로 산 어느 우체국장.... 반송 (返送) - 개봉하지 않았음.

*헤밍웨이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네"

-김광규-
한 줄의 시는 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권력과 재산을 얻었으며 유명 문인으로 하여금
거짓으로 쓴 권력자의 묘비를 비아냥거린 이런 시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살다가는 그 흔적. 어쩌면 망자가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메세지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는 묘비명.
내가 본 묘비명 중에서 가장 위트가 넘치는 것은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아시다시피, “어영부영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라는 묘비명.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요, 백 살 가까이 천수를 누린 이가 이런 말을 했다니,
나 같은 필부로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경지다.
“일어나지 못 해 미안하네”라는 헤밍웨이의 묘비명이나,
“에이, 괜히 왔다”는 중광 스님의 묘비명도 재미있지만,
멋스럽기로는 예이츠의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이여, 지나가라”
( 시인은 이처럼 아름답고 멋스런 표현을 좋아하지만,
나는 산문투로 이렇게 풀이한다.
내 무덤에 넋 놓지 말고 담담히 보게나. 자네 삶도 담담히 보고.
여기서 얼쩡거리지 말고가서 자네 일이나 보시게나)

또, 자신의 시구에서 따온 듯한 릴케의 묘비명은 자못 비장미가 넘친다. --

“오 장미, 순수한 모순이여!”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