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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갈 때 KF-16 전투기·수류탄 사 간다고 ?

해풍 2014. 12. 6. 15:03
 첫 댓글은 당연히 “미치겠군~”으로 시작했다. 바로 이어서 “제 생각에는 카빈이 싸고 좋을 듯합니다. 
예비군 중대에 문의해 보세요”로 댓글이 이어지더니 “나는 공군 갔다 왔는데 KF-16 전투기 사느라 죽는 줄 알았다”
 “전 포병이었는데 의정부로 입대할 때 견인포 노리쇠 뭉치 170만원에 샀는데… 
일반 보병이면 50만원 선에서 해결 가능할 거다”는 등 기발한 답변이 쏟아졌다.

 “그거 보충대 문 앞에 가면 다 팝니다. 흥정 잘하시고…”에서부터 “K-2 중고 30만원에 절충 가능. 수류탄까지 2개 9만원에 샀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군대를 다녀온 현역들은 배꼽을 잡았고 미필들은 무슨 소리인가 했다. 이렇게 진지한 답변들이 단체로 달리고 있는 동안 단 한 사람도 ‘입대할 때 군사장비를 갖고 가지 않는다’고 정색하고 답변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다 아는 것을 혼자 심각하게 답변하는 것은 대세에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인터넷 용어로 ‘진지빨’이라고 한다.

 이런 단체 거짓말하기를 ‘단결력’으로 치켜세우는데 남자들의 단결력이 그중 으뜸이다. 이런 유머가 있다. 
남편이 외박하고 와서 친구네 집에서 자고 왔다고 했다. 미심쩍은 부인이 남편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면 10명 중 7명은 ‘그랬다’고 대답한다. 
심지어 나머지 3명은 아직도 옆에서 자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준다는 것이다. 
비슷한 일로 자주 소개되는 것이 인터넷에서는 술집 영수증 사건이다. 
한 부인이 남편의 술집 영수증 같다며 사진을 올리면서 이게 혹시 단란주점인지 룸살롱인지 물었다. 
댓글은 대부분 고급 안주일 뿐이라며 부인을 안심시키는 ‘의리’로 채워졌다.

 인터넷에서 남자들식 의리를 지키는 것을 ‘강도살’이라고 한다. 강호에 도리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반대 용어로는 ‘강도땅’이라고 한다.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라나. 그래서 19금 사진의 링크를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강도살이라는 댓글이, 보여주지 않는 글에는 강도땅이라는 댓글이 붙는다.

 여자들의 경우 단결력은 주로 ‘상간녀에 대한 저주’로 나타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글이 올라오면 바람 피운 남녀에 대한 비난과 저주를 쏟아부으며 의뢰인을 위로한다. 
만일 글을 올린 의뢰인이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면 미련 없이 헤어지라는 응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시어머니가 밉다는 글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비난이, 시누이가 밉다는 글에는 시누이가 못됐다는 댓글이 붙으면서 공감을 보여준다. 
나름 인터넷 위로 방식이고 여자들의 단결력이다. 따지고 보면 며느리의 문제도 없지 않겠지만 
이런 거짓말의 단결력은 글쓴이에게 위안이 되고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

 가끔 이런 거짓말 단결력이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네이버의 영화 평점놀이가 그렇다. 
한국 영화 ‘클레멘타인’과 ‘영웅’은 네티즌 평점이 각각 9.28, 9.29대로 최고 평가에 속한다. 
실제론 흥행에 참패한 영화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암이 나았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아직 살아 있을 이유가 남아 있는 것이다”는 찬사가 쏟아진다. 
결국 궁금한 사람은 영화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은 “나만 당할 수 없다”며 거짓말 단체의 또 다른 회원이 된다. 
만일 이 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바보 취급하는 댓글이 단체로 쏟아진다. 
물론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만 보고 인터넷 여론을 판단하면 오해하기 쉽다. 인터넷의 글은 글이 아니라 말이다. 
문어체가 아니라 구어체로 쓴다. 그러나 한번 더 들여다보면 그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 집단 속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 단결력을 통해 소속감을 갖고 싶은 마음이다. 
알면서 함께하는 거짓말, 거기에 네티즌의 해학과 풍자가 있다. seerlim@gmail.com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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