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릉, 건릉에 가다
2011년10월 22일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자정된 융릉, 건릉에 다녀왔다.
입장권을 받는 맞은편에 재실이 있고 입구를 통과하면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융릉이고 왼쪽으로 가면 건릉이다.
융릉은 이조 제 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그 부인 홍씨의 합장묘인 영우원을 양주 배봉산(지금의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정조 13년에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륭원이라 고쳐 불렀고 건릉은 정조재위 24년(1800년)에 서거하여 이곳 융릉의 오른쪽에 묻혔다.
519년의 역사를 가진 이조시대의 왕릉 42기(이북에 2기포함)가 하나도 훼손됨없이 잘 보존된 예는 세계 어느곳도 없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영특하였으나 영조의 대리청정을 하면서 노론(당파)의 외면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 영조의 미움을 사 자결을 명 받았으나 용서만을 빌자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사망하였다 함.
정조는 문치뿐만 아니라 무예도 출중하여 활 50발을 쏘면 49발을 명중시키고 한발은 모조리 명중시키지 않기 위해 남긴다고 할 만큼 대단했다함. 재임중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힘쓰고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붕당정치의 폐허를 막았다함.
봉분등 묘역조성은 미리 완성하고 시신은 능침(묘)앞 혼유석 밑을 파고 땅속 수평으로 관을 밀어 넣은 후 통로를 폐쇄하고 혼유석(무거운 돌판)으로 입구를 봉하여 완성 한다는것을 배웠음. 또한 왕릉에만 세워지는 무인석이 이곳 융릉에는 세워져 있는게 특징임.
입구를 지나 조금 가면 이정표가 나타남
울창한 상수리나무숲에 어린이들이 소풍와서 놀고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뒤로 사도세자 융릉이 보임
정자각(제 지내는 곳)
정자각의 아름다운 처마와 지붕
융릉에서 바라본 입구
무인석(말 옆)은 왕릉에만 있다는데...
융릉(묘 주위엔 병풍석이 있다)
건릉(묘주위에 난간석만 있다) 앞의 혼유석수직-수평으로 파서 시신 넣고 메꾸고 혼유석 설치하여 도굴방지
재실(제사준비및 능참봉 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