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와 고달사터 답사
서초구 역사문화탐방의 일환으로 10월 6일 여주 신륵사와 고달사터에 다녀왔다.
신라 진흥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고려 말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하면서 유명해진 사찰로서 보물이 7개나 있고, 드물게 강가에 자리한 유서깊은 절이다. 교육대 임기환교수로부터 사찰에 대한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그 중
㉠범종각에는 사물이 조성되어있고 아침, 저녁으로 사물을(법고, 목어, 운판, 범종)을 순서로 치게 된다는 것과 법고의 양면 가죽은 한쪽은 암소가죽으로 다른 한쪽은 수소가죽으로 음양고려 만든다는 것과 인간을 위해, 목어는 물고기를 위해, 운판은 하늘을 나는 것을 위해, 범종은 지옥의 모든 중생을 위해 소리로 일체중생이 번뇌를 벗어나고 지혜와 깨달음을 얻게 하기위해 친다고 한다.
㉡또한 처마및 풍경이나 스님이 사용하는 목탁도 물고기형태로 만들어 진 이유는 물고기는 눈까풀이 없어 잘때도 눈뜨고 자기 때문에 이는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이 가운데 있고 지옥을 관리하는 왕이 10명 둘러서 있는데 염라대왕은 머리에 책을 이고 있는 왕으로 그 책에는 인간이 저승으로 왔을 때 염라대왕이 이 책을 보고 형량을 판결하는데 그 책에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업이 기록이 되어있는 장부라 한다.
㉣조사당에는 나옹선사의 목상과 그 뒤로 무학대사 지공선사(인도승) 나옹선사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나옹선사의 사리가 담겨진 부도는 종모양으로 만들어져 석종형부도라는데 그 크기가 남한에서 제일이며 인도식 무덤형태라고 하며 부도비석은 목은 이채가 쓴 글이라고 한다.
여주군 북내면에 위치한 고달사터는 신라 진골귀족출신의 원감국사 현욱이 당에 구법유학을 갔다가 850년경 신라 경문왕의 명령으로 이곳 혜묵산 기슭에 고달원을 열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원종대사의 비석을 받혔던 귀부와 비석위에 얹혔던 이수(비석은 경복궁근정전에 이설) 그리고 두 대사의 부도와 그 외 여러 가지 구조물과 함께 넓은 절터만 남아있는 곳이었다.
들판엔 벼가 익어 황금물결 이루고
산비탈엔 억새풀이 바람에 나부끼는 날
신륵사에 갔다(절 입구 전경)
범종각 사물중 법고와 목어
명부전 내부의 지옥관리 10왕중 염라대왕은?(머리에 책 이고 있는 왕이라함)
조사당 내부의 세 고승 초상화(앞의목상은 나웅선사라 함)
나웅선사 사리가 들어있는 석종부도와 석등, 비석
벽돌로 쌓아올린 다층전탑(고려시대)
고달사 터
고달사터내의 옛 물통(3000승려가 살았다 함:많이 살았다는 얘기?)
원종대사의 비석을 받혔던 귀부와 비석위에 얹혔던 이수(비석은 경복궁근정전에 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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