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을 오르며
2013. 6. 17.
배낭에 물과 카메라만 챙겨 넣고 집을 나선다. 신분당선을 탔다. 시계가 11시반을 가리키고, 전철 안이 조용하다. 청계산입구역에서 내려 주차장 옆길을 지나는데 아직도 진입로 공사로 인도엔 먼지가 풀석 거린다. 산 입구를 지나 개울을 따라 조금 오르는데 개울의 조그만 바위 위에 색색의 운동화 몇 켤레가 놓여있고 카메라를 든 젊은이가 물 흐르는 가운데 돌출한 돌 위에 한켤레를 올려놓고 방향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는다. 아마 조그만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인가 보다. 월요일이라서 인지 단체 등산객은 눈에 뜨이지 않고 홀로 오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월요일 산행은 참 오래간만이다. 복지관은 오늘부터 방학이고 집사람은 아침에 2박3일 일정으로 친구들과 여행 갔다. 집에 있으니 심심하여 지인을 불러 함께 산행이나 할까 생각하다 혼자 오르는 게 편하기도 하고 생각할 여유도 가질 겸 온 것이다.
청계산은 내가 좋아하는 코스가 있다. 입구를 지나 조금 오르면 첫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올라 길마재 정자에서 잠간 숨을 고른 다. 여기서 곧장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돌아 가다보면 헬기장 오르는 길도 지나고 매봉 오르는 길도 지나 망경대 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간다. 방향을 우로 돌아 능선을 오르다 보면 매봉이 나온다. 매봉에서 잠간 쉰 후 매바위, 돌문바위, 헬기장, 공중전화부스를 지나 지루한 계단 길을 내려와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능선길을 가다보면 옥녀봉이다. 시야가 확 트인 과천경마공원을 바라본 후 1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이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가장 많이 불어오는 휴식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상당시간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한 후 원터골 약수터를 지나 입구로 하산하는 코스다.
오늘도 같은 코스를 계획하고 왔으나 한창 다닐 때와는 달리 오래도록 등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린 속도로 등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느슨한 속도로 오르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생겨 주변을 돌아보며 오른다. 올해 들어 처음 산행이었던 한달전에 친구들과 왔을 때는 불어오는 바람에 아카시아꽃 향기가 실린 연푸른빛의 나뭇잎 이었으나 오늘은 짙은 녹색에 아카시아꽃향을 대신한 밤꽃 내음이 코를 진동한다. 길마재의 정자까지 올라 시계를 보니 50분이 넘게 걸렸다. 장거리산행 준비 차 체력단련을 위해 한 달간 매일 왔던 10년 전에는 25분이었는데 완전히 배로 걸린 것이다. 목을 축이고 옆길을 돌아 한참을 가다 보니 건장한 남자 7명이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나보다 더 느리게 간다. 그 뒤를 따라가니 일행 중 맨 뒤에 가는 분이 동료들게 길을 비켜드리라고 큰소리로 안내한다. 본의 아니게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며 감사의 말을 건냈다. 모처럼 산행에서 양보하고 양보 받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매봉에 오르니 동남아인 피부색의 외국인 20여명이 올라온다. 어떤 회사에서 단체로 산행 온 모양이다. 같이 온 한국인도 무슨 말인지 모르나 유창하게 외국인과 같은 말을 한다. 하산은 조금 힘이 들어 통상 다니던 코스를 택하지 않고 공중전화부스 위치에서 올라온 루트 방향으로 내려왔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시원한 수박 한쪽 먹으니 몸은 고되지만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길에 보기만 해도 지친다
청계산에서 오직 나리꽃 하나밖에 보지 못했다(밤꽃도 냄새만 맡음)
육중한 나무가 지난해 태풍에 부러진대로 있다
매봉에서
공중전화부스 있었던 곳에서 바라본 하산 계단
산행 루트